애니메이션의 문제점.

미칠 것 같은 한국 애니메이션 [1]


원화를 이어붙여 재밌는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것은 어려운 원천기술이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양감, 입체감, 역동감을 단지 그림들을 연속적으로 나열함으로서 창조해내는것은 세계적으로도 일본, 미국에서나 온전히 구현되고 있는 기술. 아마 소프트 스킬중에서는 매우 어려운 영역에 속할것이다.

만화 "둘리", "달려라 하니", "까치"의 인물들은 부자연스럽게 움직인다. 같은 8 프레임의 장면이라고 해도 일본 애니속 인물들의 움직임과 한국애니속 인물의 움직임은 어딘지 모르게 다르다. 일본 애니의 움직임 배후에는 마치 어떤 보이지 않는 선같은게 있어서, 그 선을 기준으로 인물의 동작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듯한 느낌이지만, 한국 애니의 움직임은 그렇게 구조적이지 못하다. 인체를 그림에 있어서 해부학이 바탕에 있고 없고의 차이점이랄까. 연출도 마찬가지. 상황의 게슈탈트가 비교적 명확히 전달되는 일본 애니에 비해, 한국 애니속 상황들은 게슈탈트를 온전히 채우지 못하거나 혹은 넘쳐버리거나 다른 지점을 가르키거나 흐리멍텅하거나 흐물흐물하다.

문제는 소위 한국 애니 최초의 르네상스였던 80년대의 이 만화영화들이 부족함을 서서히 메꾸고 나가고 있었다는 점. "이야기의 재미" 자체는 어떤 일본 애니보다 더 각별했던 둘리는 움직임과 연출의 수준 역시 일본 애니가 십년, 이십년전에 달성했던 지점을 향해 느리지만 꾸준히 전진하고 있었다. 움직임은 더 자연스러워 졌으며 상황 설명 역시 명확하게 진행되었다. 중학 축구 선수가 볼 트래핑과 키핑 연습을 하듯 한국 애니는 가장 기본적인 기술들을 닦아나가고 있었다. 거기서 꾸준히 발전이 진행되었다면 어느 시점에 일본 OVA수준의 무난한 작품들이 나왔을것이고, 그러면 또 언젠가 '대단한' 작품들도 나왔을것이다.

그러나 소위 '산업'논리가 도입되면서 한국 애니는 갑자기 제2의 "아키라"를 만들어야 하는 의무를 떠안게 되었다. 중학생 보고 갑자기 호나우도가 되라고 닦달하는 꼴이었다. 기본기를 닦아야할 시점에 무모한 도전을 강요받게 된 그들은 결국 웬만한 예술영화보다 더 거창한 주제의식을 내세웠지만 기본적인 연출과 움직임은 처참한 괴작들을 양산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아마겟돈'. 밑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이런 무모한 기획들은 얼마안가 종언을 고하게 된다. 수백억의 손실과 수많은 상처들을 남기고서. 2012년 원더키드가 김산호와 고유성스러운 소박함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었다면 라젠카와 아마겟돈은 아키라스러움을 목표로 삼았다. 불가능한 목표는 달성될수 없다.

애니가 살려면, 다시 기본으로 내려가야 한다. 당장에 '아키라'나 '공각기동대'를 내놓고자 하는 실현불가능한 망상을 버리고 말이다. 평범하게 재밌고, 적당히 잘만들어진, 보통의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만드는것이, 지금 주어진 과제다.




by 20th소년소녀 | 2008/05/25 05:05 | 이것저것들 | 트랙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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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JOSH의 험난한 세상.. at 2008/05/25 14:26

제목 : [ETC]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에 관한 이야기
링크 : '상업 애니메이션'과 공동작업의 중요성    '백금기사의 기묘한 연구소' 에서※ 내적인 요인에 관해 집중해 쓴 글입니다. 외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는 역사와 맞물려 나중에 더 다룰 것 같습니다.이번 일본여행가서도 도쿄도에서 애니담당하셨던 공무원 분과마침 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전에 신카이씨랑 같이 만난 적도 있어서,신카이씨 신작(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봤냐하는 이야기 하다가...이번 SICAF에 한......more

Commented by 오뎅사리 at 2008/05/25 14:03
이것은 어떻게 보면 외형적인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선 너무<작가주의>적인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라고 고집하고 있고, 학생들도 본인의 능력도 생각하지 않고 작가주의적인 경향-즉 어려운것-에만 치우쳐서 만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나오기 힘들어 지고 있는것입니다. 애니고에서는 비싼장비를 둬놓고 쓰지 못하게 하고, 대학에서는 구색만 맞췄지 정작 필요한 기자재가 충분히 없어서 만들기 힘든 환경입니다. 이것이 표면으로 드러나야지 고쳐지는 것인데 그 어떤 언론도 다루지 않고 외형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더군요. 안습입니다.......
Commented by 時水 at 2008/05/25 16:35
철저하게 상업적인 작품을 내놓아도 그것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소비해 줄 소비자 층이 턱없이 얇은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작가주의적인 작품이 성공할리 없지요. 본문과 오뎅사리님의 리플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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